몇 년 전에 대한민국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아들’이라고. 아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고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라고. 특히 아들의 금전적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해서 자서전이라도 쓰려고 한다고. 그때의 ‘욱!’한 심정이란? – 그 기사를 읽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사를 잊고 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거의 모든 개봉 영화를 보는 나이기에 어떤 영화를 보고 다시 그 기사가 떠 올랐다.
2015년 9월 10일 대한민국에서 개봉한 손승웅 감독의 영도. 극 중 주인공 영도는 연쇄 살인범의 아들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당연히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할 악몽 속에 살고 있으며 끝내 악몽처럼 죽는다. 그에게 살아 생전 다른 선택은 절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관객은 그의 죽음이 애석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극 중 영도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며 사실 선한 면이 몇 몇 부각되기까지 한다. 그는 아버지만 아니면 어쩌면 정말 착한 청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쇄 살인범의 아들로, 어머님에게 버림 받은 아들로, 사회의 학대에 가까운 천대를 받으며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그에게 정말 다른 기회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영도는 어쩌면 굉장히 가치있는 영화였다. 만약 연쇄 살인범의 아들이 영도처럼 산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것을 영화 영도를 보며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똑같은 연쇄 살인범의 자식으로 살아야 하는 한 여성의 삶을 그린 오늘 소개할 이 영화 ‘엘르’는 정말 달랐다. 그녀는 영도와 똑같은 연쇄 살인범의 자식이지만 삶의 질적 수준 자체가 ‘달랐기’ 아니 ‘틀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6월 15일 개봉한 엘르 포스터다. 해당 영화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과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사실 포스터의 ‘냉혹하고 우아한 그녀의 복수’나 ‘매혹적인’ 등의 관련 기사, 심지어 필자가 다른 개봉 영화를 보기 위해 수 번이나 봐왔던 이 영화의 극장판 예고편은 해당 영화의 본질 자체를 왜곡시킬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조차 은폐시킨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그녀는 연쇄 살인범의 딸이며 수십 년 전 아버지가 수십 명을 죽인 그 날 현장에서 함께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 할머니까지 된 그녀는 사실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의 CEO이기도 하다. 즉 그녀는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사실은 그녀 자신 또한 잔혹함의 사이코 패스적 기질 또한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 어찌보면 똑같은 연쇄 살인범의 자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영도처럼 그 주제가 교훈적이지 않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게 정말 이 영화의 매력이다.
전혀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지 않을뿐더러 주인공이 불쌍하지도, 주인공 때문에 슬프지도 않다. 그래서 ‘관객인 나’는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편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허리우드에서 제작되지 못했다. 대중적으로 사랑 받지도 못하는, 대중적으로 솔직히 매혹적이지도 않는 극중 캐릭터 때문에 – 내 생각이다 – 감독인 폴 버호벤은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프랑스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폴 버호벤 감독. 그렇다. ‘원초적 본능’, ‘로보캅’, ‘쇼걸’, ‘스타쉽 트루퍼스’의 폴 버호벤 감독이다.
특히 해당 작품 ‘엘르’와 관련하여 나는 캐릭터 때문에 ‘원초적 본능’에 살짝 집중하고 싶다.
1992년 5월 23일 개봉한 ‘원초적 본능’은 그 당시 단연코 화제작이었다. 마이클 더글라스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샤론 스톤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세계적 섹시 스타로 등극했으며 취조를 받던 중 꼰 다리를 바꾸는 극 중 그녀의 행동은 수 많은 매스컴을 통해 연신 회자됐다. 그런데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극중 샤론 스톤이 연기한 역은 작가로 록스타 살인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것도 정사 중 송곳으로 살해한 살인 혐의로 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으로 그녀가 진짜 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암시 쯤으로 끝난다. 매혹적이라는 표현은 사실 이때가 더 적절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극 중 그녀는 ‘사실 정말로 연쇄 살인범이 아니였을까?’ 싶다.
그리고 2017년 현재, 감독은 이번에는 더 치열한 설정으로 관객에게 다가왔다. 극 중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CEO이며 단 하나! 그것 빼고는 인생 자체가 절망인 캐릭터이다. 물론 그 절망은 극 중 캐릭터의 가족 관계에서 기인하나 그녀 자신의 성격 또한 그 절망을 일으키는 원흉 중에 하나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가 이제 등장하는데 결론이 지극히! 매우! 해피 엔딩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사실 어찌보면 현실에서는 악녀 측에 속하는 캐릭터다. 단지 그녀가 강간을 당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리워져 있을 뿐이다. 생각해봐라! 전 남편의 주차한 차에 아무렇지도 않게 뺑소니 사고를 일으키며 가장 친한 친구이자 회사 동료의 남편과 불륜 관계이며 크리스마스에 초대한 이웃 부부의 남편을 유혹하고 있다. 도덕성 제로다!
그래서 강간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호도하게 만드는 함정이다. 1992년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 스톤이 관객과 극 중 인물들에게 선사한 함정이 섹시함이었다면 25년이 지난 ‘엘르’에서 극 중 주인공이 관객과 극 중 인물들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감추기 위해 파 놓은 함정이 강간이라는 말이다. 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고편과 포스터도 그랬으니까. 문득 궁금해진다. 폴 버호벤 감독의 100% 의도였을까? 아니면 프랑스에서라도 제작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선택의 문제였을까?
여하튼 영화는 해피 엔딩이다. ‘그리고 또는 그래서’ 차라리 편했다. 주인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결론이 해피 엔딩이라 편한 영화는 정말 간만이다. 연민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는 그래서’ 사실 이 부분은 푸코의 ‘광기의 역사’ 중 죄의식의 부재와 같은 맥락이다. 영도에서는 분명히 선명하게 느꼈으니까. 마치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성추행 당한 아동들의 책임이 마을 전체(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처럼 .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게 교훈을 주지 않는 것이 ‘영도’라는 영화에서도 더 좋았지 않았을까? 라는 오만한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보며 꼭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감독이 도덕 선생님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야만 좋은 영화, 훌륭한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폴 버호벤 감독에게 오늘도 하나 배웠다.
스스로 자신의 민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족의 후예들! 찬란한 역사와 민족적 자긍심이 넘쳐야만 하는 민족! 그래 넘쳐야만 하는 민족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이라고 떠도는 글을 아는가? 일본군 성 노예 망언 발언의 최전선 지휘관인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할아버지라는 소문이 무성한 쌍놈!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우리는 패배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컨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 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은 조선민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조선은 실로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신민 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며 만약 필자의 의견을 물어본다면 필자는 오늘 소개할 영화 박열이라는 작품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박열! 처음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을 모르고 접했다. 사실 대략 15년 전 쯤에 박열이라는 사람의 기록을 꼼꼼히 읽었으나 그냥 잊었던 것이다. 그리고 해당 영화의 카피도 포스터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다. 그래 이 영화가 필자는 조선시대 상놈의 반란을 영화화했다고 착각했다. 물론 사전 정보를 될 수 있으면 선취 안하고 영화를 보는 것이 원칙이라 당연히 예고편을 보지 않고 간 것이 이러한 결과를 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어가면서 뭔가 오싹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실화인 것 같은, 실화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놀랍게도 통쾌하고 심지어 유쾌하게 펼쳐졌다. 물론 약간의 지루함은 있었지만 이는 그 날 필자가 극장에서 연이어 본 영화가 무려 네 편이나 되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박열!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아나키스트로 실존했던 인물이다. 1902년에 태어나 1974년 1월 17일에 서거한 그는 우리나라의 재일 민간 단체인 민단의 초대 단장이기도 했으며 1989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 장에 추서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통쾌, 유쾌한 사람이 어떻게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필자가 교과서에서도 배우지 못했을까? – 의아했는데 검색해보니 이유는 이외로 간단했다. 6.25때 월북 당했다. 하지만 월북 당한 건지 확실치가 않다고 한다.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장을 맡았고 북한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은연중에 없는 사람 취급을 했나 보다. 슬프다. 분단된 현실이.
영화는 무조건 추천이다. 12세 관람가이니 자제분들과 함께 보는 것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최근 개봉작은 대충 다음과 같다. 박열, 리얼, 트랜스포머, 지랄발광 17세 등등. 영화 연평해전 개봉했을 때 필자는 연평해전이 재미있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그런데 재미까지 있었다. 지금 딱 박열이 그렇다. 그리고 더 재밌다. 최근 개봉작 네 편 중 아마도 객관적으로도 가장 재밌을 것이다. 당신의 후회없는 선택! 지금 당장 극장에 간다면 무조건 추천작이다. <박열>!
* 추신1. 우리 민족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족의 후예라는 증거는 청나라 공식 역사서인 흠정만주원류고를 보면 바로 그 역사적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역시나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인 단채 신채호 선생도 주장한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의 역사가 한반도를 넘어서 만주를 포괄하여야 비로소 친일사학자들과 임나일본부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 때문이다. 발해와 신라 남북조 시대를 뒤이어 청과 조선의 남북조 시대를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적 가치는 믿으면서 조선 보다 후에 세워진 청나라의 공식 역사서에 청이 경주김가가 세운 나라라고 쓰여 있으며, 이러한 주장을 KBS 영상실록 팀이 중국 고서 박물관을 방문해 확인하고 중국 국립대 교수의 인터뷰까지 딴 영상이 이미 수년 전에 공중파까지 탔는데도 아직도 이게 한민족의 주류 학설이 아닌 것이 놀랍고 놀랄 뿐이다. 이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족의 팍스 코리아나를 위해 우리는 새로운 역사관의 적립이 필요하며 물론 필자는 이것이 문화와 게임을 통해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라마지 않는다.
*추신2. 주인공이 아나키스트인 이 영화의 감독은 이준익이다. 그가 제작한 작품으로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아나키스트들의 영화 한편 더 추천한다.